엄마가 그렇게 떠나신지 이제 4개월도 지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학교 다니며 동기들이랑 너무 즐기고 있는 것 같아 너무 죄송합니다. 지금도 또 밤늦게 술한잔 하고 들어왔네요. 아버지는 매일 혼자 집에서 힘들어 하시는데 전 평일이면 그냥 공부도 하긴 한다지만 운동과 놀기에 바빠서 제대로 신경도 못 써드립니다. 특히 이번주 산부인과는 수술장에서 너무 많이 일을 시키긴 했는데 이것도 다 핑계라면 핑계겠지요.
자연분만과 제왕절개를 몇 번이고 참관하면서 아기가 세상에 나오는 걸 봤습니다. 세상에 나오고 그 몇 초간 상당한 긴장감이 있습니다. 아기가 비로소 스스로의 폐로 호흡을 하며 세상과 인사하고, 우렁차게 울음을 터뜨린 후에야 저도 안심하며 속으로 아기를 반겨줍니다. 그렇게 신생아 검사를 그 자리에서 몇 개 받고 포대기에 둘둘 말려서 엄마 곁으로 가서 엄마와 만나더군요.
24년 7개월 전 길병원에서 저와 당신의 첫 만남도 비슷했을 겁니다. 제가 몇 주 일찍 나오겠다고 설쳐서 엄마가 위험해지고 응급 제왕절개를 했다고 하는데, 그 순간부터 저는 정말 엄마께 뭐 하나 제대로 베풀 수 있는 자식이 될 수 없는 운명이었나 봅니다. 돌이켜 생각하면 전 정말로 단 하나도 엄마를 생각하고 위하며 진심으로 베푼 적이 없습니다. 남들은 열심히 공부하여 의대에 왔으니 그게 곧 엄마의 기쁨이자 자랑거리라 하는데 결국은 다 제 입신양명을 위한 것이었을 뿐 제대로 된 효도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엄마의 사소한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진심으로 다가가지 못했고 그저 놀리기 바빴습니다.
엄마, 몇번이고 이미 말씀드렸지만 특히 오늘 더 죄송합니다. 일상을 너무 즐겁게 보내서 죄송합니다.
1학년 때 먼저 어머니를 떠나보낸 동기 형의 말이 정말 사실이었네요. 이제는 엄마의 목소리조차 제대로 기억나지 않아요.
옛날 우리 조상들은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2~3년 아무 것도 안 하고 그 주위를 지킨다고 들었습니다. 웬지 3월 그 날에 휴학계를 내고 집에 머물렀어야 했던거 같기도 합니다. 어떻게 자신의 모친이 그렇게 가셨는데 자식은 일주일만에 학교에 나왔는지 제가 보기에도 제 자신이 좀 뻔뻔합니다....
제가 정말 이렇게 엄마를 한 쪽에 묻어두고 즐거운 일상을 사는 것이 잘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가르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