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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방명록

장모님 수필집에 기고한 할머니와의 추억의 글 남겨 봅니다.

  • 작성자
    김강산
    작성일
    2016년 10월 28일(금) 00:00:00
  • 조회수
    208
- 향기로 추억하다 -

대법원 근무로 쉴 틈 없이 바쁜 집사람이 오랜만에 시간이 나 양수리에 있는 ‘봉주르’를 찾았다. 서울에서 멀지 않고 가는 길과 주변 경관이 아름다우며 음식 또한 맛있는 봉주르 카페는 여전히 사람들로 넘쳐났다.

민서는 지난 번 미리 준비 못해 모닥불 터(카페 외부에 손님들을 위해 장작으로 모닥불을 지펴 놓고 있다)에서 고구마를 굽지 못한 아쉬움을 떨칠 생각에 설레이며 고구마를 두 봉지나 사 왔다. 나 또한 민서 못지않게 봉주르 방문을 설렌 이유가 있었다.

언제부턴가 시골길 등을 운전하거나 거닐 때 익숙한 냄새(장작, 지푸라기 타는 냄새 등)를 맡게 되면 민서에게 이야기하곤 했다. “민서야, 이 냄새 맡아져? 아빠가 정말 좋아하는 냄새야. 아빠는 이 냄새를 맡을 때마다 옛날 어렸을 적으로 돌아가곤 해.”

정말 그렇다. 장작이나 나뭇가지, 지푸라기 타는 냄새를 맡을 때마다 광천 외할머니집에서 자라던 어린 시절(외할머니는 어머니의 육아부담을 덜어주고자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나를 키워주다시피 하셨다), 아궁이 앞에서 쪼그려 앉아 부지깽이로 장작을 들썩이던, 추운 겨울 마른 논밭에서 동네 아이들과 함께 구멍 송송 뚫린 깡통에 불붙인 나무조각들을 넣고 쥐불놀이를 하던, 집 앞 냇가에서 얼음배를 타다 젖은 양말을 모닥불에 말리던, 천장에 주렁주렁 매달린 메주들이 있는 흙담집 방에서 화롯불에 고구마, 밤을 굽던 내 모습들이 아련히 떠올랐다.

어머니를 외동딸로 두고 있던 외할머니의 장손 사랑을 듬뿍 받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너른 시골의 자연 속에서 순박한 친구들과 아무 걱정 없이 뛰어놀던 유년시절이 좋아서였을까... 어쨌든 그 시절이 많이 행복했었기 때문일 거라고 짐작해 본다.

어느덧 그 시절 어린 손주 뒷바라지와 살림까지 억척스럽게 하시던 젊은(?) 외할머니는 앙상하게 늙으셔 돌아가실 날만을 기다리고 계시고, 나 또한 짧지 않은 삶의 여정에서 반환점을 돈 중년이 되었으니 옛말과 같이 인생은 시위를 떠난 화살과 같이 빠르고 무상도 한 것 같다.

오늘은 장작 타는 냄새 말고도 열심히 부지깽이로 장작을 뒤적거리고 있는 민서의 모습에서도 과거의 나를 돌아보게 된다. 그 뒷모습이 꼭 예전의 나의 모습처럼 보인다. 이래서 자식은 분신이고, 자식이 부모를 추억하면서 부모의 가르침을 새기며 살아간다면 세상을 떠나면서도 아쉬울 게 전혀 없을 것 같다. 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 중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라고 말하리라.”는 시구를 남길 법도 하다. 괜한 감상에 젊은 놈이 별소리를 다 하는 것 같다.

나중에 어른이 된 민서는 어떤 향기로, 어떤 냄새로 과거를 추억하게 될까... 하나뿐인 사랑스런 민서를 위해 집사람과 함께 행복한 추억들을 많이 만들어 주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더불어 이전의 ‘존경 받는 가장이 되자’는 삶의 지향을 ‘엄마를 많이 사랑한 아빠’로 기억되자는 다짐으로 바꾸어 본다.


2014년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길목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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